[작가와 함께하는 글쓰기 컨설팅] _ 36. 단락 구분을 잘해야 이해하며 읽기가 편하다

글쓰기 바로 알기 2020. 5. 11. 15:37

을 쓸 때 여러 가지 챙길 것도 많지만 그중 단락 구분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긴 글을 읽을 때가 문제다.

문장이 끊기지 않고 계속 진행되면 독자들은 다소 당황할 수밖에 없다.

흔히 하는 말로 숨도 못 쉬게 할 만큼 답답하고 지루하게 만든다.

상대방과 대화를 나눌 때 상대방의 의사를 무시하고 제 말을 쉬지 않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한 번쯤 그런 경험을 해 봤을 것이다.

그런 사람과 대화에 짜증을 느낀 나머지 다음에는 그 사람과 얘기 나누길 꺼려 할 수밖에 없다.

건물도 비상구가 있듯이 어떤 일이든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일부 소설책에서 거의 두 페이지를 단락을 바꾸지 않고 쓴 글을 본 적 있다.

아무리 재미있는 내용이라도 부담이 안 될 수 없다.

저자는 나름대로 어떤 뜻이 있었겠지만 독자들에겐 부담이 가는 부분이다.

독자에게 배려하는 차원이라면 단락에 대한 구분을 재검토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대개 설명문인 경우 7-8줄 정도에서 줄을 바꾸는 게 합리적일 것 같다.

필자의 견해로는 기장 적당한 단락이라 생각한다.

기계적으로 자로 잰 듯 그 양만큼 단락을 지어라는 얘기는 아니다.

이야기의 사안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락을 너무 짧게 나누는 것도 문제다.

그렇게 하면 설명에 대한 집중력과 진중성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넘쳐도 탈이고 모자라도 탈인 것 같다.

무릇 글을 쓰는데 있어서 원칙은 없다.

자기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것이다.

자기 글에 대한 책임성은 따르겠지만....

‘보기 좋은 떡이 맛이 좋다’는 말이 있듯이 요즘 시대는 디자인 시대다.

디자인 하나가 상품의 판매량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요즘 시중에 나온 책을 보면 디자인에 무진 애를 썼다는 걸 한눈에 볼 수 있다.

비단 책뿐이겠는가.

우리 사회는 모든 부분에서 디자인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러한 측면을 감안하자면 글 쓰는 사람들도 자기 작품을 디자인할 줄 알아야 한다.

잘 쓴 작품을 디자인이 좋지 않아 독자들이 등을 돌린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단락 구분도 그런 측면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독자들이 읽기 쉽고 이해하기 편하게 하라는 것이다.

또한 하나 더 유의할 부분이 있다.

한 단락에서 두 가지 이상의 이야기를 쓰지 말라는 것이다.

한 가지 이야기가 끝나면 단락을 바꾸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섞어놓으면 독자들은 헷갈리게 된다.

이와 같이 단락 구분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작품을 읽는데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데 있어서 단락 구분을 잘 염두에 두고 사건을 풀어갔으면 한다.

디자인을 잘 해서 독자들에게 나쁠 것은 없지 않은가.

일기 글이나 동화 등속은 대체로 설명이 길지 않다.

장르에 따른 차이다.

아이들에게는 긴 문장보다 단문을 쓰듯, 단락도 자주 바꿔서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배려의 차원일 수도 있다.

그래서 아이들 대상으로 쓴 책들은 그림도 많고 글도 빼곡하게 쓰지 않고 다소 여유 있게 보인다.

이처럼 독자에 따른 단락 구분도 잘 처리해야 한다.

그러려면 다양한 장르를 접해 보고 그에 따른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공들여 작품을 쓰게 되면 그만큼 가치 있지 않겠는가.

몇 마디 사족을 더 붙이면 명품 옷은 모든 재료가 고급이어야 하겠지만 단추 하나 바느질 한 땀 한 땀을 함부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품을 쓰는 데 있어서 사건만 쫓지 말고 단락 하나도 관심을 갖고 잘 정리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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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함께하는 글쓰기 컨설팅] _ 35. 특별한 대안이 없으면 남이 가던 길로 가라.

글쓰기 바로 알기 2020. 5. 8. 15:26

나의 작품을 구상할 때 온갖 생각을 다 하게 된다.

구상하다가 안 되면 차를 마시기도 하고 노래를 듣기고 하고 때로는 시원한 바람을 쐬기 위해 밖으로 나가기도 한다.

산모가 아기를 낳듯 한 편의 작품을 낳기까지도 힘든 여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도깨비방망이 두드리듯 순간적으로 완성된 작품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원고를 청탁받아서 기한 안에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작품을 완성해야 한다.

뚜렷한 작품 구상이 되지 않은 상태라면 작가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무에서 유로 창조하는 것인 만큼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 철저히 차별화된 작품을 내놓을 때 작가의 위상은 서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산통을 겪듯 자기와 싸움을 해야 하는 것이다.

구상했던 작품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 최후의 수단은 기존의 기법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어떤 등산가가 산길을 가고자 할 때 자기만의 새로운 길로 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지만 없던 길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남이 가던 길로 가는 것은 더욱 구미에 맞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만약 해가 기울기 전에 정상을 밟아야 한다고 하면 치밀한 계산을 앞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문명은 모험가에 의해 뚫리거나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길도 처음부터 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이 미쳤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무슨 일이든 새로운 일을 하게 되면 불안하고 초조할 수밖에 없다.

성공 여부를 장담하기도 힘들다.

그렇지만 내가 가야 할 길이라면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장이 많이 나야 훌륭한 기술자가 되듯이 많은 시행착오 끝에 훌륭한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없다면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게 좋다.

시간을 끌다가 아무 것도 되지 않으면 절망밖에 얻을 게 없다.

이러한 경우 필자가 권하고 싶은 것은 그냥 남이 걷던 길을 따라가라는 것이다.

남다른 재주를 발휘하기는 힘들지만 기본점수는 취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정해진 용기에 재료를 넣으라는 얘기다.

흔히들 문장 연습하기 위해 필사를 많이 한다.

자기만의 문장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남보다 빨리 문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필사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

어떤 방법이 나은지는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어떤 방식을 채택하든 자기 목소리를 가졌으면 한다.

그게 예술가의 기본자세가 아닐 듯싶다.

어떤 글이든 기본적 형식을 갖고 있다.

그 형식대로 따르면 크게 고민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시는 시어를 반드시 써야 하고,

함축성이 있어야 하고,

짧아야 하는지,

그리고 미학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등등,

소설에 있어서도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과정을 그대로 지켜야 하는지,

그리고 분량도 원칙을 지켜야 하는 건지,

그 외 인물묘사 배경묘사 등을 하지 않고 스토리를 가져갈 수 없는지 등등.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릴 수 있다.

과거 일부 과학자들은 말도 안 되는 연구 자료를 내놓거나 말했다가 세인의 비웃음을 사거나 참수를 당한 일도 있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처럼 문명이 발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남이 이뤄놓은 일을 그대로 따라 한다면 그러한 부작용은 없다.

싸울 일도 감정 상할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 대신 큰 발전이 없을 것이다.

선택은 자기 몫이다.

자신 없으면 기존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가라.

눈길을 차로 몰고 갈 때 앞에 선행하는 차가 내놓은 타이어 자국대로 따라가면 사고 위험성은 훨씬 줄어든다.

앞 사람의 희생이 있었기에 본인은 그 혜택을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이 일어나든 너무 무리하게 마음의 짐을 쌓지 말라는 뜻이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이 있는 것이고, 고장이 나면 다시 수리하면 되는 것이다.

 

항상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 세계관을 갖는 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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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함께하는 글쓰기 컨설팅] _ 34. 접속사를 남발하지 말라

글쓰기 바로 알기 2020. 5. 7. 17:39

쪽과 다른 한쪽을 연결하는 것을 접속이라고 한다.

서로 잇는다는 것은 끊기지 않고 다음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한다는 의미다.

끊어진 다리를 이어주고, 사람 간의 갈등을 제삼자가 관계를 개선해주기 위해 접속하게 되고, 결혼에서는 중매쟁이가 중개 역할을 잘해서 서로 합일하게 만들기도 한다.

무슨 일이든 가운데서 서로의 관계를 잘 잇게 해주면 부작용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듯이 너무 지나치면 문제가 있다.

예전에 필자가 글쓰기를 가르친 적이 있었는데 대개의 아이는 접속사에 목을 매는 것 같았다.

일기장이나 독후감 등을 보면 접속사가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마치 접속사가 없으면 글을 못 쓸 것 같았다.

그 한 예를 들면

 

나는 아침에 일어났다. 그리고 세수를 했다. 그리고 밥을 먹었다. 그리고 이를 닦았다. 그리고 가방을 챙겨 현관 밖으로 나왔다, 학교에 가다가 보니까 준비물을 갖고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집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부리나케 색종이, 가위 등 준비물을 가방 속에 넣었다. 가방이 무거웠다. 그래서 양쪽 손에 번갈아 가며 들고 갔다.

위의 문장을 보면 접속사 ‘그리고’, ‘그래서’가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필자는 아이에게 접속사를 빼고 쓰지 않겠냐며 물었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접속사를 빼고 한번 읽어보라고 주문했다.

아이는 접속사를 제거하고 읽어보았지만, 여전히 어색한 모양이다.

그래서 어려워하는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글을 쓴 사람은 평소에 습관적으로 접속사를 쓰기 때문에 접속사를 빼면 당연히 이상할 수밖에 없단다.

그런 습관은 함께 고쳐 나가보자. :)"

여기서 위의 문장을 접속사 없이 한 번 정리해보자.

 

나는 아침에 일어났다. 세수했다. 밥을 먹었다. 이를 닦았다. 가방을 챙겨 현관 밖으로 나왔다. 학교에 가다 보니까 준비물을 갖고 오지 않았다. 나는 집으로 되돌아갔다. 부리나케 색종이, 가위 등 준비물을 가방 속에 넣었다. 가방이 무거웠다. 양쪽 손에 번갈아 가며 들고 갔다.

 

필자가 보기에 크게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글이란 의미 전달만 되는 것이다.

문장 간에 의미 전달이 되지 않으면 그땐 접속사를 사용하든 어떻게 하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위의 문장 경우에는 접속사를 모두 빼더라도 이야기 전개상 문제가 없는 것 같다.

만약 문장 간 연결이 어색하다면 줄을 바꾸는 방법도 있고,

문장을 합치거나 엇비슷한 의미로 바꾸면 해결할 수 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세수부터 했다. 황급히 밥을 먹고 나서 이를 닦았다. 어젯밤에 챙겨둔 가방을 둘러매고 용수철처럼 현관문에서 튀어나왔다.

학교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다가 뒷머리가 시큰했다. 준비물을 책상 옆에 두고 온 것이다. 할 수 없이 집으로 되돌아와서 색종이와 가위를 가방 깊숙이 넣었다. 가방은 돌덩이를 넣은 것처럼 무거워서 양쪽 손에 번갈아 가며 힘들게 학교로 향했다.

 

 

위의 글에서 보듯 접속사 없이 자연스럽게 문장이 이어지고 있다.

중간에 줄 바꾸기를 해서 상황을 더욱더 자연스럽게 이끌기도 한다.

이처럼 접속사를 쓰지 않고 얼마든지 문장을 써나갈 수 있는 것이다.

접속사는 군더더기가 될 소지가 많다.

하지만 꼭 필요한 예도 있다.

접속사가 있다는 것은 나름대로 쓰임새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부터라도 접속사 없이 문장을 써 보라.

 

아마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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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함께하는 글쓰기 컨설팅] _ 33. 내 글을 읽는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승패가 갈라진다

글쓰기 바로 알기 2020. 5. 6. 19:14

 

을 걷다가 발을 헛디디면 발목을 삐거나 빠질 것이다.

열심히 일해서 헛일로 돌아가게 되면 얼마나 허무하겠는가.

무슨 일이든 헛짚게 되면 그 후유증은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게 되면 면밀히 살펴서 실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따뜻한 정도 있겠지만 때로는 얼음처럼 냉정하기도 하다.

옷을 만드는 사람은 나이와 직업, 신분에 따라 거기에 알맞은 옷을 제조한다.

음료나 음식, 노래, 각종 공연, 영화, 드라마, 게임 등속도 마찬가지다.

시장조사를 철저히 해서 소비자의 요구에 적합한 것을 찾는다.

시간과 돈을 들여서 만든 제품이 팔리지 않는다면 문제가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연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전 연령층을 만족시키는 제품이 있다고 가정하면 그것은 가장 성공적인 일일 것이다.

앞 장에서 언급한 일이 있었던 판타지 소설 ‘해리 포터’의 경우는 많은 연령층을 흡수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만족할 만큼 해리 포터의 파급은 실로 컸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흔치 않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사람 일이란 앞일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데 있어서 면밀한 검토부터 해보자.

나는 어느 부류에 앵글을 맞출 것인가부터 고민해야 한다.

그러려면 위에서 소개했듯이 상대가 누군지를 정한 다음 그 상대에 대한 연구를 깊이 해야 한다.

때로는 취재도 필요하리라 본다.

무슨 일이든 새 상품을 내놓기 위해서는 철저한 시장조사가 선행돼야 한다.

역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고 거기에 대해 크고 작은 투자도 밑받침돼야 그 일이 진척되고,

급기야 자기 뜯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징검다리 걷듯 긴장하면서 한 걸음씩 내디뎠으면 한다.

내가 가진 장점이 소비자의 요구와 일치한다면 그거야말로 금상첨화일 것이다.

하지만 한 작품으로 끝나지 않고 여러 작품을 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어쩔 수 없이 시간과 돈을 투자할 수밖에 없다. 작품을 대충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과자 상품이 있을 때, 과자 포장의 디자인이 시대에 맞지 않거나,

내용물도 부족하거나 깔끔하지 못하다면 소비자는 하나같이 등을 돌리고 말 것이다.

제품 하나를 제조할 때는 소소한 것 하나라도 관심을 두고 만들어야 한다.

글 쓰는 사람들도 어휘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에 온 정성을 다 바쳐야 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잘 만든 글이라도 독자의 마음을 끌지 못하면 안 된다.

그래서 내 작품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독자층이 누군지 재차 살펴서 홍보해야 한다.

이 시대 사람들의 구미에 맞은 작품은 무엇일까, 판타지, 추리소설, 무협 소설, 스릴러물 등등 독자들은 다양하다.

그 독자들을 흡수하기 위해 고심하는 작가들이 많다.

한편으로는 고집스럽게 자기 노선을 걷는 사람도 많다.

대개 작가들은 자기 성향이 있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다른 성향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없다.

그래서 고집스럽게 독자노선을 걸으며 자기와의 싸움을 하는 것이다.

대중작가로 나가기보다 자기 세계를 그리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잖아 많다는 얘기다.

실상 어떤 부류가 더 나은지 가르는 일은 무의미한 싸움밖에 되지 않는다.

자기 의지가 중요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 작품을 상품화시키고 싶다고 마음먹었으면 충분한 시장조사를 해서 실행하는 되는 것이다.

시위를 떠난 화살이 빗나가면 얼마나 허탈하겠는가.

그러니 화살을 쏘기 전에 충분한 기량을 쌓아야 한다.

내 글을 남에게 보여줘서 실망시키게 되면 독자들에게 신뢰를 잃을 수 있다.

그래서 실패하지 않으려면 자신이 목표한 대상을 집중하여 연구하고 또 연구해야 한다.

만약 지방 사투리를 대화에 넣고 싶다면 그 지방 사투리를 집중해서 공부해야 한다.

젊은 층을 대상으로 만든 이야기라면 젊은 층의 성향이나 언어와 문화를 연구해서 거기에 걸맞은 정서를 부여하면 된다.

글을 쓰기 전에 대상을 선정하는 것이 가장 첫 임무인지 모른다.

그 대상이 정해지면 주제를 정하고 플롯을 짜서 펜을 들면 되는 것이다.

대상을 가장 이해하기 쉬운 방법은 그들과 함께하고 함께 소통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 속으로 들어가기만 한다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게 가장 진솔한 우리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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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함께하는 글쓰기 컨설팅] _ 32. 판타지 소설에 대한 편견을 버려라

글쓰기 바로 알기 2020. 5. 4. 19:47

늘의 우리 문화는 하루가 다르게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그중 하나로 판타지를 들 수 있다.

판타지는 이제 생소한 분야도 아니다.

우리 생활 깊숙이, 아니 우리 몸속에 이미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 게임, 장난감, 영화 등등 모든 분야에서 체험하고 느낄 수 있을 정도다.

그중 필자와 관련된 판타지 소설에 대해 얘기를 하고 싶다.

판타지 소설은 문단에서 마치 이단아 취급하는 경향이 짙다.

마치 판타지는 문학작품과 거리가 있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

일부 문인들은 기존 문학작품이 갖고 있는 형식과 작품성을 문제 삼았을 것이다.

탄탄하지 못한 구성력과 인물 묘사, 그리고 흐트러진 문장력 등속에서 그 문제점을 찾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런 연유인지 학교 내외에서 행해지는 각종 백일장에서 판타지 작품은 거의 배제하는 상황이다.

한 마디로 수상자에서 제외한다는 소리다.

학생들은 정통 문학보다 오히려 판타지에 많이 기울어져 있다.

우리의 청소년들은 이미 판타지에 관심을 두고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기득권층은 이들의 움직임에 별로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하지만 냉정한 시선으로 본다면 현재 기성 문인들이 소설 작품들은 거의 독자층을 잃은 상태다.

그런데도 그들은 기존의 입장을 취하는 듯하다.

과거에 몇 백만 부의 책을 팔며 베스트셀러를 구가했던 시절은 이미 옛날이야기가 됐다.

요즘은 몇 만 부만 팔려도 베스트셀러로 오늘 정도다.

이러한 현상은 미디어 문화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기득권층의 고질적인 문학관도 문제가 있다.

시대가 흘러도 과거와 별반 다를 게 없는 문학성은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아직도 주입식에다 줄 맞추기식 대입을 준비하는 우리 교육 현실과 엇비슷하다.

자기반성 없이 문학의 발전을 여망하는 행태는 하루빨리 사라져야 할 것 같다.

요즘은 의학이나 과학기술도 여러 갈래로 세분되고 새로운 분야도 끊임없이 생성된다.

이를 부정하거나 방기하게 되면 경쟁사나 경쟁국에 뒤처지게 돼 있어서 발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이다.

대학가도 과거보다 생소한 학문으로 많이 뒤바뀌었다.

문학도 새로운 장르를 인정하고 그에 대한 연구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

판타지라는 이유로 문학에서 배제하기보다 그에 대한 문제점을 잘 파악해서 고쳐나가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해리 포터의 경우를 들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해리포터 작품을 판타지라는 이유로 문제 삼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해리포터의 여파로 판타지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는 이전보다 훨씬 높아진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국내 판타지 소설은 다소 소외된 실정이다.

이유야 여러 가지 있겠지만 지금부터라도 문호를 크게 열어야 한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곧 남도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술은 구속하면 안 된다.

예술은 무한한 것이다.

법도 진화를 거듭하듯 예술도 끊임없는 진화를 하는 것이다.

각 개인의 개성을 인정해주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든 그것은 자기 몫이다.

어떤 틀을 두고 억제하는 행위는 있어서 안 된다.

판타지가 아닌 그 어떤 글을 쓰든 상대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 문학을 발전시키는 일이다.

적절한 물갈이가 있지 않으면 그 물은 썩기 마련이다.

나를 버리는 연습이 없으면 발전이 없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이제 모든 장르에 대한 새로운 점검이 필요하다.

각 장르별 새로운 시도가 요구되기도 한다.

우리는 시, 수필, 소설 등등 그 장르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다.

마치 수학공식이나 되는 것처럼 어떤 정해진 방식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인식되어 있다.

판타지도 그런 시각에서 소외받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시가 짧아야 되고 소설이 길어야 된다는 사고도 버려야 한다.

예술가가 기계처럼 어떤 정해진 규율대로 움직인다면 그것은 모순일 수 있다.

글 쓰는 사람에게 어떤 규정을 말하는 것은 족쇄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창의성을 발휘하겠는가.

사실 독자들은 문학에 대한 전문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

문화 예술을 즐길 때 거기에 대한 전문성보다 재미있으면 그만이다.

전문가들은 자기 입장에서 독자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면 안 된다.

전문가와 독자 간 절묘하게 사고가 일치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비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떤 수학적인 방식으로 상대를 읽으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문인들은 적어도 나와 독자들과의 마음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위험한 발상은 남들에겐 변하기를 바라면서 자기는 변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글이 좋아서 자기 세계를 담는 사람을 구속해서는 안 된다.

실험자들은 거듭된 실패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글 쓰는 사람들은 기존의 기성 작품에 목을 매지 말고 자신의 글을 쓰도록 매진했으면 한다.

그것이 문학 발전에 기여하는 일이다.

틀린 글씨만 쓰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가리지 말고 썼으면 한다.

기존 문학작품에 기대기보다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라고 하고 싶다.

그 길이 멀고 험하더라도 자기만의 세계를 찾았으면 한다.

그래서 예술가의 길은 외롭고 쓸쓸한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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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함께하는 글쓰기 컨설팅] _ 31. 틀린 문장을 알려면 소리 내서 읽어라

글쓰기 바로 알기 2020. 4. 29. 19:17

 

릴 때는 책을 읽을 때 소리 내서 읽는 일이 많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읽기를 시키는 것은 좋은 교육일 수 있다.

소리 내서 읽으면 묵독하는 것보다 책 내용을 더 꼼꼼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글을 소리 내서 읽게 되면 시간이 더 지체되는 단점도 없지 않다.

무슨 일이든 장단점이 있겠지만 한 편의 글을 제대로 몸에 익히려면 둘 다 병행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지 모른다.

음양의 논리로 봐도 그렇다.

음은 조용하고 소리 내지 않는 것이지만 양은 소리가 나는 것이다.

그래서 음양이 잘 어우러지면 가장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쪽으로 편중되지 않고 균형을 잡는 일이기 때문이다.

영어를 문법만 잘하면 되는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영어교육은 듣기, 말하기, 문법 등속으로 이루어진다.

결국 과거에 영어 공부했던 기성세대는 두 가지를 하지 않은 셈이다.

그 결과 과거에 영어를 잘했던 사람이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글쓰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책을 많이 읽었다거나, 문법을 잘 한다거나, 글을 많이 썼다고 해서 말을 잘하는 법은 없다.

흔히 부모들은 자녀교육을 하면서 책을 많이 읽게 한다.

책을 많이 읽으면 글도 잘 쓰고 말도 잘할 거라는 사고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책은 책이고, 글은 글이고, 말은 말일뿐이다.

연관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절대적이지 않다는 걸 주지했으면 한다.

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로 책이나 자기가 쓴 글을 소리 내서 읽어보라고 한 것이다.

그렇게 하면 문제점을 스스로 알게 된다.

특히 긴 문장을 쓴 경우 그 문제점이 더욱 잘 나타난다.

한 문장 안에 여러 이야기 중첩되는 경우가 많아서 무슨 얘긴지 혼돈을 준다.

그래서 이러한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문장을 간결하게 쓰도록 유도한다.

간결하게 쓰다 보면 맞춤법이 틀리는 경우가 훨씬 줄어든다.

그렇다고 해서 간결체로만 쓴다면 그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짧은 문장과 긴 문장을 적절하게 잘 배합하여 쓸 필요가 있겠다.

이것도 음양 논리에 근거한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짧은 문장은 음이며 긴 문장은 양으로 보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된다, 안 된다고 하는 개념은 별 의미가 없다.

긴 글도 잘 쓰는 사람은 지루하지 않게 술술 읽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짧은 문장은 단순하고 알맹이가 없어 보이지만 시간이 시어(詩語)나 함축성 있는 말을 선택한다면 긴 글 이상으로 감동을 준다.

그래서 어떤 고정관념은 가질 필요가 없다.

유려한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습작이 필요하다.

그리고 습작한 글을 소리 내서 몇 번이고 읽어 보라.

그렇게 하면 글쓰기 공부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대체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리 내어 읽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위에서 말했듯이 어릴 때만 소리 내어 있는 것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많다.

차츰 나이가 들수록 입이 닫히게 된다.

마음속으로만 읽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사람을 일컬어 과묵하다고 한다.

남들과의 대화도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는 가정에서부터 출발하는지 모르겠다.

가족 간의 대화가 턱없이 부족하고, 일선 학교에서도 토론 수업하는 일이 미미한 실정이어서 자연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대방과 대화를 하게 되면 부자연스럽거나 기피하게 된다.

특히 성격이 소심한 사람이라면 더욱 적극적인 용기가 필요하다.

무슨 일이든 처음에는 멋쩍고 떨리는 법이다.

하지만 나중에 익숙해지면 스스럼없이 하게 된다.

내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야 한다.

너무 남을 의식하게 되면 그만큼 남들에게 뒤처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번 기회에 실험정신을 갖고 소리 내어 책을 읽어 보라.

 

하루가 다르게 나아진다는 것을 스스로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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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함께하는 글쓰기 컨설팅] _30. 기본 틀에 얽매이지 말고 거침없이 써라

글쓰기 바로 알기 2020. 4. 28. 19:48

 

 

편의 글을 쓰기 위해 너무 완벽한 틀을 짜려고 고뇌하면 진척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쓸까?

소재는 무엇으로 할까?

글의 시작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글의 주제가 너무 진부하지 않을까?

독자들의 비웃음을 사지 않을까?

 

 

등등 끊임없는 고민을 하게 된다.

 

즉, 문제가 빨리 풀리지 않고 시간만 허비하는 경향이 많다.

잘못하면 다음으로 미루거나 포기하는 일도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한 편의 글도 못 쓰게 되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필자도 글을 쓸 때 많은 고민은 한다.

큰 종이를 펼쳐놓고 구상을 한다.

등장인물을 나열해 놓고 각각 인물 묘사나 역할, 사건 사고의 발단부터 기술해나간다.

그리고 도표를 그리기도 하고 그림도 그리는 경우도 있다.

글 쓰는 사람들에게 한 번쯤 권해보고 싶은 일이다.

큰 종이를 펼쳐놓고 구상을 하면 한눈에 보이니 편리한 점이 많다.

물론 사람마다 자기 성향이 있겠지만 필자는 이런 방식을 선호하는 편이다.

하지만 실제 작품으로 들어가면 밑거름으로 그려 두었던 구상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럴 때는 난감해질 때가 있고, 다시 재구상하는 일이 종종 있다.

그래서 처음에 글을 구상할 때 너무 완벽하게 밑그림을 그릴 필요는 없다.

적어도 내가 예상했던 주제 의식만 흐트러지지 않는다면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여행을 가더라도 너무 완벽하게 준비하려고 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짐을 최대한 줄여 가볍게 가려고 해야지, 소소한 물건까지 모두 챙기겠다고 하면 피곤한 일이다.

글을 쓸 때도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펜을 잡아야지, 잔뜩 긴장한 가운데 불안한 마음으로 글을 써 나간다면 한 편의 글을 완성하기까지 엄청난 스트레스를 맛볼 것이다.

필자는 글을 구상할 때 제대로 되지 않을 때는 다 덮어 놓고 무작정 펜을 잡는다.

그리고는 떠오르는 대로써 나간다.

먼 산을 바라보고 그냥 무작정 걷은 것이다.

가다 보면 길이 나오겠지 하는 심정으로 맞부딪히는 방법이다.

그런데 생각잖게 효과를 많이 보았다.

글을 쓰는 일에 있어서 정해진 방법은 없다. 흔히 하는 말로 모로 가도 산 정상에 오르면 되는 것이다.

모험을 하게 되면 위험성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위험하다고 실행하지 않으면 전혀 발전은 없는 것이다.

괴인 물이 썩듯이 바다까지 가려면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머물지 말고 떠나야 한다.

이처럼 글이 잘 쓰이지 않는다고 낙망하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용기를 갖고 덤벼볼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글을 쓰다가 내 뜻대로 잘 안되더라도 밀고 나가라고 하고 싶다.

일단 완성을 해 두고 다시금 정비하면 되는 것이다.

그 어떤 작가도 한 번에 완성된 작품은 없다.

처음에 완벽한 구상을 해서 글을 썼다고 하더라도 끝나고 나면 끊임없이 교정에 교정을 가한다.

출판사에 편집부 직원들이 왜 있겠는가? 재차 말하지만, 글을 잘 쓰려면 소심함을 버려야 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여행을 준비할 때 제아무리 완벽하게 한다고 해도 떠나고 나면 뭔가 항상 하나씩 빠트리는 게 있다.

그러므로 글쓰기 전에 아무리 완벽한 밑그림을 그렸다고 해서 나중에 작품이 그대로 잘 될 거라는 믿음은 버려야 된다.

재차 말하지만 어떤 틀 속에 갇혀서는 안 된다.

기성작가들이 자기 작품 집필 과정을 글이나 말로 얘기하는 경우가 있다.

사람들은 자신도 그렇게 따라 하고 싶어 한다.

사람의 심리란 잘하는 사람을 그대로 따라 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마련이다.

만약 이럴 것 같으면 자신도 그 틀에 갇히고 만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장점을 잘 찾는 일이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실험을 하다 보면 스스로 자기만의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신과의 싸움을 치열하게 할 필요가 있겠다.

무조건 써라.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절망하여 넋을 놓지 말라.

그렇게 하면 단 한 편의 글도 못 쓸 수 있다.

 

자신감을 갖고 쓰다 보면 언젠가 길은 열리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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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함께하는 글쓰기 컨설팅] _ 29. 경직된 글은 피해의식에서 나온다.

글쓰기 바로 알기 2020. 4. 24. 14:21

 

리는 삶을 사는 동안 많은 경험을 하게 된다.

기쁨, 슬픔, 짜증, 분노 등을 가끔 경험하게 된다.

학교에서나 사회에서 받는 각종 스트레스는 사람을 절망 속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요즘 분노조절장애와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정신, 육체적으로 힘들게 만들고 있다.

특히 빈부격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은 삶의 뿌리를 흔들기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경직돼 있다는 평판을 외국인에게서 듣는다.

삶에 찌들어 여유로운 문화 활동이 상실되고 먹고살기에 급급하다 보니 자연히 얼굴이 어둡고 경직될 수밖에 없다. 그 현상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가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사람들은 머리를 맞대면 단골 메뉴처럼 나타나는 것이 정치 이야기와 직장내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 사고들이다. 물론 이성 문제도 한몫하는 것 중에 하나다.

사연이 얼마나 많으면 밤새 이야기해도 끝이 없는 경우가 있다.

그만큼 피해 의식에 젖어 산다는 척도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글을 쓰게 해보면 거의 다 경직된 글을 쓴다.

분노에 가득 찬 마음을 글로 풀고자 하다 보니 자연히 경직된 글이 안 나올 수 있겠는가.

마치 무기를 들지 않았지만 글로 가해자한테 폭력을 쓰는 듯했다.

필자도 사는 동안 분노를 억제하지 못한 경우가 더러 있었다.

특히 노동자 생활할 때 상사로 받았던 갑질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열악한 임금구조와 장시간 노동은 생활환경을 뒤집어 놓았기 때문이다.

모든 인생을 회사를 위해 투자하는 것 같았다.

바깥에서 즐기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일요일도 특근한다고 출근했으니 가족과 가까운 곳에 산책할 여유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하나씩 그 분노가 쌓여갔다.

노동자들은 그 분노를 이기지 못해 집회하기도 한다.

필자 같은 경우도 그러한 경험을 한 적 있었다.

그 경험을 글로 옮긴 적 있었는데 역시 경직된 글로 나타났다.

마치 거친 파도가 바위를 때리듯 필자의 글은 지극히 경직돼서 부드러운 글은 자리할 수 없었다.

분노조절장애란 병도 이해가 간다.

그러한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아픔을 알기 어렵다.

어떻든 피해자로 지냈던 그러한 삶은 고스란히 경직된 모습으로 글에 나타났다.

제삼자들은 글을 쓴 사람보다 훨씬 더 잘 느낀다.

저자는 자기감정에 치우친 나머지 자신의 경직성을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글을 쓸 때 감정의 기복이 있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경우 그 대안으로 습작을 끊임없이 하라거나 작품에 대한 여러 사람과 합평을 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실천을 하다 보면 경직된 글은 다소 줄어 들것으로 확신하다.

경직된 글을 접하게 되면 책을 읽는 사람조차 마음이 어둡고 경직될 우려가 높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속성이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이 내 글을 기피한다면 그것은 다시금 생각해볼 일이다.

단 유의할 것은 경직된 글이라고 해서 작품성이 없다는 쪽으로 몰고 가면 곤란하다.

모든 것은 일장일단이 있기 때문이다.

경직된 글과 경직된 대화는 상대방을 힘들게 만든다.

무슨 일이든 넓은 소통을 하려면 잦은 만남과 많은 글쓰기를 통해 극복해야 한다.

같은 말이라도 억양이나 말투에 따라 극명하게 달라질 수 있다.

이런 부분이 단시간에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점차 극복될 수 있는 부분이다.

글쓰기를 통한 자기 수행도 된다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글은 흥분된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

문인들은 대개가 마음이 부드럽고 안정돼 있다.

무슨 일이든 마음이 안정돼 있지 않으면 사고 칠 가능성이 높다.

마음이 언짢은 상태에서 아니 흥분된 상태에서 글을 구상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항상 느긋한 마음을 갖고 가슴속에 내재한 분노를 다독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자의 말을 빌리면 부드러움이 딱딱한 것을 이긴다고 하질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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