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함께하는 글쓰기 컨설팅] _ 28. 문장이 맘에 안 들면 통째로 빼라.

글쓰기 바로 알기 2020. 4. 23. 15:30

 

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소재가 적합하지 않은 것을 만날 수 있다.

무슨 일을 하게 되면 그 과정에서 항상 변수는 있기 마련이다.

마음먹은 대로 일이 잘 풀리면 아무 걱정 없겠지만 일이란 게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만약 집을 지을 때 미송이 없어서 참나무를 써야 하는지 아니면 물푸레나무를 써야 하는지 나름 고민을 하게 된다.

집을 짓는 사람은 실수하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잘못 건축하여 물이 새거나 틈이 벌어진다면 그 목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하나의 집이 완성되기까지 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집을 짓는 동안 크고 작은 문제는 항상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목수는 그에 따른 대비가 필요하다.

만약 기둥을 세웠다가 디자인이 맞지 않거나 하자가 있는 나무라면 목수는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기둥 디자인을 바꾸거나 나무 재질이 좋지 않으면 흔히 하는 말로 땜질을 해야 한다.

그게 불안하면 아주 기둥을 뽑아버려야 한다.

판단은 본인이 해야 한다.

어떤 방법이 효율적인지 가늠해봐야 한다.

만약 자꾸 고치다가 오히려 시간과 돈을 낭비할 수 있다.

그럴 것 같으면 차라리 기둥을 새것으로 교체하는 게 더 낫다.

글을 쓰는 데 있어서 이를 잘 적용한다면 효율적인 글쓰기로 이어질 수 있다.

글을 쓰다 보면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혹은 이야기가 앞뒤로 맞지 않을 경우도 있다.

이렇게 되면 대개의 사람은 문장을 바로잡기 위해 몇 번이고 수정을 가한다.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도 나아지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때 과감하게 그 문장을 통째로 빼버리는 방법을 쓰게 된다면 의외로 글이 잘 풀릴 수 있다.

필자도 종종 그런 경험을 했다.

글을 쓰다가 문법이나 내용이 내 의도를 빗나가면 통째로 지운 적이 있다.

한 번은 장편소설을 집필한 적이 있는데 전체 분량의 절반 이상을 쓴 상태였다.

문장을 떠나 이야기 자체가 내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 것이다.

필자는 오랜 고민을 했다.

고치려니 시간이 더 걸릴 것 같고, 통째로 버리자니 그동안 수고가 아까웠다.

고민 끝에 전체를 버리기로 결정했다.

마치 자식을 갖다 내버리는 것 같은 심정이랄까.

하지만 더 붙들고 있는 것은 오히려 더 힘들게 만들 것 같았다.

그래서 난 모든 자료를 다 지우고 다시 시작했다.

작품을 완성하고 났을 때 머릿속은 홀가분했다.

‘지난 작품 잘 버렸다. 버리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 작품 때문에 골머리가 아플지 몰라’ 하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손이 많이 가는 문장이나 이야기는 눈 질끈 감고 버리는 것이 좋다.

억지로 붙들고 있으면 오히려 스트레스만 더욱 쌓일 뿐이다.

모든 것은 버릴 때 그 순간은 아쉽고 마음이 아프지만, 세월이 지나면 차츰 무뎌지게 돼 있다.

포기한다는 것은 새로운 일을 창출한다는 소리와 같다.

무슨 일이든 미적거리거나 아까워하면 그 결말은 비효율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무엇을 고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 성격 고치기 어렵듯, 습관처럼 굳어져 있는 자기만의 글쓰기를 과감하게 손질할 수 있는 용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억지로라도 자신의 습관을 바꾸려고 노력하면 불가능한 일도 없다.

필자는 문장이 꼬이거나 짜증이 나거나 하면 휴지통에 과감히 버린다.

음식을 잘못 먹어 속이 메슥거리게 되면 과감하게 토하는 게 오히려 속이 편한 법이다.

메슥거리는 상황에서 오랫동안 머리 굴리며 시간과 전쟁을 벌이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러므로 글쓰기에서도 머리 싸매지 말고 통째로 버리는 연습부터 하라.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면서 스트레스받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즐기면서 쓰려면 그만큼 배포 큰 용기도 필요한 것이다. 포기하는 순간만큼 행복한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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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함께하는 글쓰기 컨설팅] _ 27. 공간적 배경은 현장감을 준다.

글쓰기 바로 알기 2020. 4. 22. 15:00

 

람은 한 공간 속에서 산다.

크게 나누면 지구라는 공간이고 국가, 지역, 직장, 어떤 카페, 집, 방 등속을 들 수 있다.

우리는 그 공간에서 생활하며 많은 경험과 기쁨, 슬픔을 느끼며 사는 것이다.

하나의 공간에서 숱한 시련과 사연을 겪고 있다.

그러므로 공간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삶의 근거지가 되기도 한다.

글을 쓸 때도 공간적 배경은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등장인물들은 그 공간에서 모든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공간적 배경을 생략하고 글을 쓰게 되면 독자는 의아해할 것이다.

화자가 어떤 위치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고 싶을 것이다.

무릇 사건 사고를 다루는 데도 일정한 공간은 분명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공간을 어떤 식으로든 보여주어야 한다.

영화를 떠올리면 이해가 더욱 쉬울 것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공간적 배경이 끊임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공간적 배경은 글의 장르에 따라 분량은 다를 수밖에 없다.

짧은 글에 비해 긴 글은 아무래도 공간적 배경을 더 할애하기 마련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기술할 수 있는 여지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필요 없는 부분까지 장황하게 늘어놓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

어떤 글이든 군더더기가 있게 되면 작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독자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만 서술하면 되는 것이다.

 

서부 경남의 중심인 진주는 예향 충절의 도시다.
진주 시내를 관통하는 남강은 지리산에서 흘러내려 온 진주시민의 젖줄이기도 하다.
조선 시대 3대첩의 하나인 진주성은 지금도 남강을 굽어보며 서 있다.
강변으로 대나무 숲이 바람에 일렁거리고 강가에 뭇 새가 나는 평화로운 도시가 진주이다.
예전엔 강가에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었지만, 지금은 고수부지로 변해 시민들의 휴식처로 변모하였다.
강을 가로지르는 진주교는 논개의 반지 낀 손가락을 이미지화해서 만든 건축물이다.
역사의 숨결이 남강을 따라 지금도 도도히 흐르고 있다.

 

위의 내용은 진주 도심을 관통해 흐르는 남강이 공간적 배경으로 나타나고 있다.

남강을 중심으로 주변 얘기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간을 제공해야 독자들은 위치를 인식하고 사건·사고에 흥미를 더욱 느낄 수 있지 않겠는가.

짧은 글을 쓰더라도 공간적 배경을 조금이라도 삽입해 주면 작품은 훨씬 더 맛깔날 것이다.

그러므로 평소 길을 가거나 여행할 때 만나는 공간들을 무심코 지나치지 말고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자.

방에 앉아서 어떤 장소를 떠올리는 것보다 현장에서 보고 느끼는 감정과는 큰 차이가 있다.

어떤 구조물도 더욱 상세히 기술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글을 쓰려고 시작하면 그 장소가 선명히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러한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면 평소에 꾸준히 경험하면서 기록해 놓는 것이 좋다.

작품 구상과 상관없이 항상 연습 삼아 공간적 배경을 써 보는 것이다.

이러한 습관이 몸에 배게 되면 나중에 글 쓸 때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글을 쓸 때 등장인물이 어떤 공간에 있는지 항상 생각하자.

하지만 같은 값이면 공간적 배경을 쓰는 데 있어서 독자들이 식상하지 않은 장소를 택하자.

낯선 장소를 찾아 독자들의 호기심을 증폭시키기 위함이다.

그리고 사건 사고에 적절한 공간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작품 내용에 부합된 장소를 선택하라는 얘기다.

 

이성 간 고백할 일이 있다면 시장터나 시끄럽고 산만한 장소보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카페가 낫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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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함께하는 글쓰기 컨설팅] _ 26. 책을 너무 많이 읽으면 독이 될 수 있다

글쓰기 바로 알기 2020. 4. 21. 14:30

 

 

즘 독서에 관해 관심들이 많다.

눈에 띌 만큼 작은 도서관들도 하나둘 보인다.

학생 중에는 초등학생이 다른 중, 고생보다 독서량이 높은 편이다.

우리 주변에 독서와 관련한 학원이나 공부방이 더러 있다.

대개 1주일에 한 권씩 읽게 하는 경우가 많다.

일 년으로 계산하면 50권 정도 읽는다는 얘기다.

물론 그 이상으로 읽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책을 가까이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책을 읽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도 없기 때문이다.

무릇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책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문장 하나하나까지 관심 두고 들여다보며 자기 문장과 비교하기도 하고 때로는 학습하기도 한다.

이러한 태도는 글 쓰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책 속에서 자기 능력을 비교하고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의 늪에 빠트리기도 한다.

특히 명문장이나 유명인의 작품이면 더욱더 관심을 두고 쳐다본다.

때로는 자신도 충분히 그 정도 글은 쓸 수 있겠다 하고 자신감을 가진다.

그렇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펜을 들면 생각잖게 한 줄도 잘 쓰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생각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그래서 글쓰기는 오랜 숙련이 필요하다. 붕어빵처럼 금방금방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글을 잘 쓰려면 책을 많이 읽어라 하는 말은 숱하게 주변에서 들어온 얘기다.

책을 많이 읽다 보니까 나도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일까.

하지만 책을 많이 읽게 되면 호불호로 갈릴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필자가 아이들 글쓰기 교육을 지도하면서 느낀 게 있다.

책을 많이 읽은 아이들은 대체로 자기 글로 보기 어려웠다는 얘기다.

이야기 내용도 엇비슷한 경우가 많았고, 문장도 기존 책에서 보았던 뭔가 냄새나기도 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자기 문장은 없고 남의 문장을 그대로 옮겨놓았다고나 할까.

다음의 경우는 꽤 힘든 경험 사례다.

“이거 네가 쓴 거 맞니?”

라고 물었을 때 아이 입에서 대뜸 튀어나오는 말은

“제가 쓴 거예요.”

하고 거리낌 없이 말했다. 그래서 재차 다시 물었다.

“내가 어디서 본 것 같아서 물어본 거야.”

그 말에 갑자기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억울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귀를 의심하면 모른 척 넘겼다.

그 후 필자는 애가 쓴 글을 밝혀 보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결국 그 글의 진위를 알아냈다.

아이가 남의 글을 도용했든지 아니면 자기도 모르게 쓰게 된 건지 둘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아이에게 다시 글의 출처를 물었고, 아이가 쓴 글과 유사한 책을 보여 주었다.

아이는 짐짓 놀랐지만 그렇게 죄의식은 없어 보였다.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썼다는 것이다.

나는 믿었다.

아이는 흡수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발생한 일일 거라고 여겼다.

필자는 이 경험에서 얻은 결론 많은 책을 읽으면서 책에 나오는 문장이 자기 자신의 문장을 덮어버렸다고 생각했다. 자기도 모르게 남의 문장이 따라오는 것이다.

어쩌면 그 아이도 피해자인 셈이다.

사물은 주변 환경에 의해 크고 작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움이 되기 위해 책을 읽은 것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은 오히려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자기 개성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책을 가까이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는 다시금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작품이 자기 개성이 없고 기계적이고 건조한 지식만 전달하는 것이라면 향기 없는 꽃과 뭐가 다를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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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함께하는 글쓰기 컨설팅] _ 25. 글쓰기는 솔직하게 써야 하는가

글쓰기 바로 알기 2020. 4. 20. 17:07

 

히들 글쓰기는 진실하고 솔직해야 한다고 말한다.

초보자의 경우 이런 말을 접하면 다소 경직한다.

글쓰기에서 거짓 얘기를 하면 안 된다는 데 그럼 어떻게 써야 하지?

솔직하게 쓰게 되면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1인칭으로 글을 쓰면 더욱 오해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이러한 고민을 누구나 한 번쯤 하게 된다.

어릴 때 받은 제도 교육의 폐해일 수 있다.

학교에서는 글을 쓸 때 자기 얘기를 솔직히 쓰길 주문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솔직하게 쓰지 않으면 혼나겠다고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이는 오히려 글쓰기를 두렵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어떤 일이든 규칙을 정하면 생각이 갇힐 우려가 있다.

특히 예술 분야에서는 치명적일 수 있다.

1960년 이후 군사정권에 의한 제도 교육은 교육의 자율성을 해친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한 영향으로 창의성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았다. 글쓰기도 그중 하나로 들 수 있다.

학교에서 글쓰기에 대한 전문교육은 거의 전무한 상태다.

글쓰기는 시험을 치르기 위한 도구로 사용할 뿐이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적 동물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교육 환경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없는 여건이다 보니까 자연히 그 폐해는 아이들 몫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자기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그렇지만 글은 속마음을 솔직하게 쓰길 요구한다.

결국 큰 용기를 내지 않으면 글쓰기를 포기하고 만다.

이러한 사유로 글 한 번 제대로 못 쓰고 인생을 다 보냈다면 얼마나 서글프고 안타까운 일인가.

요즘은 심심찮게 자서전을 쓰고 싶다는 장, 노년층이 많이 생겼다.

뒤늦게 글쓰기를 배워서 자기 인생을 한 번 써보겠다는 것이다.

나이가 드니까 이전에 비하면 별로 잃을 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래서 용기가 생긴 것일까.

살아생전에 자서전이라도 써서 자신의 내면을 확인시켜주고 싶었던 것일까.

어떻게 보면 이 또한 생각할 부분이 있다.

자서전이야말로 진심 어린 마음으로 솔직하게 써야 하는 글이다.

자서전이나 신문 기사 일기 등속은 거짓으로 쓸 수 없는 장르다.

하지만 대개의 문학 장르는 굳이 구속 당할 필요가 없다.

그저 이야기일 뿐이다.

물론 내 이야기가 구성상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그대로 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여러 트릭도 쓸 수 있고, 상상을 개입할 수도 있는 문제다.

독자는 저자의 사생활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작품 그 자체를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 혼돈해서는 안 된다. 독자에게 좋은 작품성으로 다가가면 되는 것이다.

구차하게 진실하냐 안 되냐, 자기 이야기냐 아니냐,에 앵글을 맞출 필요가 없다.

작품 속에 저자의 성격이 일부 포함될 수도 있고, 구성상 저자의 성격이 다소 왜곡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글을 쓰다 보면 저자의 내면이 개입되지 않을 수 없다.

소소하게라도 언급되는 일이 많다.

작가들의 작품을 분석해보면 자기 얘기를 액면 그대로 쓰는 작가는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무조건 글은 진실하고 솔직하게 써야 한다는 식은 무모한 요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글 쓰는 사람들에게 족쇄를 채우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글 쓰는 사람의 기본적인 자세는 어떤 구속도 당하지 않고 자기 세계를 그렸으면 하는 것이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자기 이야기를 그대로 썼다고 해서 독자들에게 공감을 받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리고 남의 이야기나 허구적인 얘기를 썼다고 해서 독자들에게 외면받는다는 보장 또한 없다.

그래서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자기 자신의 몫이다.

솔직하게 쓴다는 사고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남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쓸 것인가를 고민했으면 한다.

어릴 때부터 이러한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예전처럼 구속된 글쓰기로 평생을 보낼지 모른다.

앞의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작중 인물의 이름을 붙일 때 실제 이름을 그대로 써도 되고 다른 이름으로 변형해서 싸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작중인물의 이름을 왜 다른 이름으로 썼냐’고 시비 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작중 인물의 이야기를 현실과 변형시켰다고 해서 문제 삼을 사람 또한 없다.

그러므로 괜히 지레 죄의식을 갖고 글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내 작품은 나의 세계관을 마음껏 펼치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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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함께하는 글쓰기 컨설팅] _ 24. 반복어를 많이 쓰면 어휘 능력 부족이다

글쓰기 바로 알기 2020. 4. 17. 15:43

 

화를 하든 글을 쓰든 반복하는 일이 있다.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많은 어휘를 구사할 수밖에 없다.

가벼운 만남은 별문제 되지 않겠지만 오랜 시간을 두고 얘기를 나누는 사람이면 대화 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성 관계도 시작단계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장단점을 쉬 알기 어렵다.

하지만 자꾸 교제하다 보면 하나씩 그 문제점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나중에 결혼하게 되면 속았다고 말하게 된다.

그리고 처음에 가볍게 여겼던 말투도 자꾸 반복되면 싫증 나게 된다.

흔히들 술자리에서 술을 먹다 보면 취기에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되면 그 사람과 자리를 함께하기가 힘들어진다.

피하고 싶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날 것이다.

이처럼 어떤 일이든 반복이 지속하면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든다.

그래서 가능한 한 반복은 삼가는 게 좋다.

맛있는 반찬도 자꾸 먹게 되면 식상하듯이 아무리 좋은 말도 자꾸 듣게 되면 거부감이 오기 마련이다.

이는 글을 쓰는 데도 마찬가지다.

특히 장편소설을 쓸 때는 더욱 유의해야 한다.

긴 글을 쓸 때 어휘 능력이 풍부하지 않으면 같은 말 반복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오해 사지 않으려면 비슷한 말을 최대한 동원해야 한다.

어휘뿐 아니라 문장도 마찬가지다.

더 확장한다면 이야기 내용도 엇비슷하면 그것 역시 문제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의 심리적으로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높다.

길거리에 붙은 간판이나 상품의 상표도 새로운 것이 붙게 되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그렇지 못하고 오랜 세월이 흘러도 항상 똑같은 모양의 글이나 그림이 있다면 사람들은 식상해서 관심을 끌지 못한다. 특

히 책을 쓰는 작가가 같은 어투로 계속 반복한다면 독자들은 외면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전면적으로 반복법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의도적으로 반복어를 구사하여 흡인력을 고조시키는 기술적 요인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은 시나 노랫말에서 간혹 접하게 된다.

예를 들면 김소월의 ‘금잔디’ 시를 보면 반복어를 엿볼 수 있다.

 

​"

잔디/잔디/금잔디/심심산천에 붙는 불은/가신 임 무덤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봄빛이 왔네/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심심산천에도 금잔디에.

"​

 

위의 시에서 ‘잔디’라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된다.

하지만 생각잖게 거부감이 오지를 않는다.

반복어를 적절히 사용하면서 오히려 시적 효과를 올리고 있다.

그래서 반복어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개인적으로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못하고 함부로 남발하게 되면 그것은 어휘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과 같기 때문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 더 사족을 붙이자면 종결형 어미다.

‘∼것이다’ 처럼 종결형 어미가 문장에서 반복해서 이어진다면 그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연이어 나타나지 않고 간간이 나타나는 것도 그렇게 좋은 인상이 아니다.

어떤 어휘나 문장이라도 그 작품에서 최대한 반복적 행위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서 이야기 주제도 엇비슷하게 써서는 곤란하다.

그러므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어휘나 문장연습이 필요하다.

오랜 수련에 의해서 이뤄지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요구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새로운 여행지를 찾아 나서듯 새로운 어휘에 대한 학습을 위해 꾸준히 해야 나중에 단단한 문장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한 번쯤 이렇게 한 번 시도해 보라.

내 작품에서 단 하나라도 같은 어휘나 문장을 쓰지 않고 완성할 수 있는지 스스로 실험해 보라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하루아침에 역사는 바뀌지 않는다.

 

오랜 시간과 피와 땀이 더해졌을 때 그 역사는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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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함께하는 글쓰기 컨설팅] _ 23. 어려운 언어보다 쉬운 언어로 시작하라

글쓰기 바로 알기 2020. 4. 16. 15:31

 

람들은 글을 쓸 때 어려운 낱말, 고사성어를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글을 쓰는 데 있어서 어떤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유의할 부분이 있다.

글은 나만 보는 게 아니라 남들에게 공개하는 차원이어서 어떤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그래서 자기감정을 지나치게 노출한다거나 편중된 시각으로 글을 쓰는 것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언어를 선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언어, 한자어, 영어 등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언어를 쓰게 되면 ‘뭔가 있어 보인다’라고 할까.

학생을 대상으로 교육을 할 때 강사가 칠판에 이러한 언어를 쓰게 되면 상대방은 기가 죽고 만다.

자기도 모르는 어려운 언어를 구사하니까 자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어떤 강사는 이를 노리고 일부러 그런 행위를 하기도 한다.

상대방을 압도하기 위해서는 좋은 수단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이 알지 못할 어려운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탓하자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남들이 자주 쓰는 식상한 단어보다는 훨씬 신선할 수 있다.

무릇 그 언어를 찾기 위해 그 강사는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다.

하지만 아무리 고급스럽고 어렵고 깊이 있는 뜻글자라도 그 쓰임새가 적절치 않으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남들이 사용하지 않는 언어들은 잘 연구해서 쓰는 게 좋다.

어려운 말을 써서 남들이 알아듣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를 두고 글쓴이는 상대방의 무식함을 탓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서로 소통은 어렵게 되고 만다.

글을 읽는 사람은 마음의 여유를 갖고 편안하게 읽고 싶어 하지 난해한 언어를 읽어가며 스트레스받을 이유가 없다. 글뿐만 아니라 대화를 나눌 때 간혹 어떤 사람들은 언어뿐 아니라 철학자의 말을 인용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윗글에서 필자는 ‘난해하다’는 말을 쓰기보다 ‘이해하거나 풀이하기가 어렵다’는 말로 쓰는 게 옳다.

가능하면 우리 말로 풀어 쓰면 글이 어렵지 않게 읽힌다.

어떤 학력이나 계층과 상관없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글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말을 모두 쓰면 다 쉽지 않겠는가 하는 반문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말 중에는 어려운 말도 부지기수다.

그 원인은 평소에 우리가 우리말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무엇이든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할 수밖에 없다.

어릴 때부터 우리말에 인식과 교육이 필요했으나 우리 현실은 너무나 동떨어졌다.

자본주의가 팽배하면서 수많은 외래어가 넘쳐나고 외계어, 비속어까지 더해지면서 우리말은 더욱 밀려났기 때문이다.

언론이나 방송, 그리고 일상 대화를 접해보면 알아듣지 못할 언어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 경우 휴대폰으로 무슨 말인지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 시대 조류에 발 빠르게 편승하지 않으면 언어장애가 올만큼 시대는 많이 변한 것이다.

여기서 한 번 점검하고자 하는 것은 어려운 언어를 사용하면서 그 언어를 쉬운 말로 풀이하지 못한다면 그것도 문제이다.

이럴 것 같으면 그냥 쉬운 말을 쓰면 될 것을 굳이 어려운 말을 쓰는 것일까. 하는 회의감마저 없지 않다.

대입 자소서나 취업에서 어려운 한자어나 고사 성어, 듣지 보지도 못했던 희귀한 내용을 쓰게 되면 과연 심사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판단할까?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대부분 채택되지 않거나 낙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고등학생의 경우 지식의 한계는 있는 것이다.

어려운 말을 쓰거나 수준 높은 지식을 구사하면 심사원들은 학생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길이 미쳤을 것으로 의심한다. 그러므로 학생은 학생다운 언어를 사용하는 게 이치에 맞는 일이다.

화장이나 옷가지를 수수하게 입을수록 사람들과의 접촉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범상치 않은 화장과 옷맵시로 나타난다면 사람과의 친밀감은 고사하고 구경거리로 끝날 우려가 없지 않다. 글쓰기에서도 너무 무리하게 어려운 언어를 가져와서 독자들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

 

쉬운 언어로도 얼마든지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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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함께하는 글쓰기 컨설팅] _ 22. 장소를 가리지 말고 메모하는 습관을 가져라

카테고리 없음 2020. 4. 14. 15:17

대사회는 복잡다단하고 그만큼 정신적, 육체적으로도 힘들다.

멍하니 앉아 있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

정보화시대에 걸맞게 사람들은 정보를 따라잡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길거리로 나가게 되면 현실을 한눈에 나타난다.

모두 어디로 가는지 발걸음이 바쁘다.

옛날 선비처럼 유유자적하게 느그적 걷는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한결같이 바쁜 모습들이다.

도심에서 지하철을 타게 되면 사람들의 발걸음은 더욱더 빨라진다.

일 분 일 초를 다투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린다.

에스컬레이터에서도 뛰다시피 움직인다.

가만히 서 있게 되면 남들에게 뒤처지거나 손해 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끊임없이 움직인다.

전철 안에서도 사람들은 넋을 놓고 있지 않다.

휴대폰으로 열심히 뭔가를 검색하거나 즐기고 있다.

과거에는 신문이나 책을 들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다.

종이 문화는 이미 역사의 저편으로 밀려나고 만 것이다.

사람들은 휴대폰에서 정보를 찾고, 차 시간을 찾고, 드라마를 보고, 게임을 하고, 유튜브에 빠져 낄낄대거나 호기심에 빠져 있다.

휴대폰이 없으면 생활 자체가 힘들 정도로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은 것이다.

이와 같은 인간들의 군상을 보며 스쳐 가는 생각도 많을 것이다.

전철 속에서 일어나는 풍경을 갖고도 글 쓸 소재는 얼마든지 많다.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것도 글 소재가 될 수 있다.

한편의 완벽한 작품을 구상하게 된다면 더없이 좋을 일이지만 간단히 메모로 대체하는 것도 좋다.

그 메모가 작품 구상에 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휴대폰이 있기 때문에 언제든 메모를 할 수 있다.

그때그때 메모를 해두면 나중에 힘들게 그 기억을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

휴대폰을 최대한 활용하면 글 쓰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다음으로 미루겠다는 것은 쓰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생각날 때 곧바로 메모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가로수에서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그 느낌을 간략하게 메모한다든지, 어떤 사건 사고를 목격하면서 느낀 감정이라든지, 상인과 거래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느낌 등등을 즉시 메모하라는 이유는 그 상황의 감정을 가장 진실 되고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시간이 흐르면 그때 느꼈던 감정이 많이 무뎌질 수밖에 없다.

음식도 방금 차린 게 따끈따끈하고 맛있는 법이다.

흔히 하는 말로 식기 전에 빨리 먹는 게 좋다. 놔두면 식거나 부패하게 된다.

무슨 일이든 즉시 처리를 하면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고, 또한 시간 낭비도 없어진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습관은 더욱 중요한 것 같다.

예전에는 종이와 연필을 항상 휴대하였지만, 지금은 휴대폰만 있으면 이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시대다.

글 쓰는 데 있어서 휴대폰만큼 유용한 것도 없다.

휴대폰이 있으니 메모도 쉬울 뿐 아니라 메모한 글이 이해되지 않으면 휴대폰으로 검색하면 웬만한 정보는 모두 받을 수 있다.

휴대폰을 잘 활용하면 정보뿐 아니라 글쓰기에 대한 도움도 받게 된다.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낙엽이 시원한 가을바람에 아슬아슬하게 피에로처럼 곡예 한다.’

‘우중충한 날씨에 버스 안은 많은 사람으로 뒤엉켜 있었다. 마치 전쟁터 피난민처럼 엉겨 붙어 있다시피 했고, 외마디 비명도 간간이 들려왔다.’

위의 예처럼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생각나는 대로 터치하면 된다.

그 감정 그대로 메모하면 되는 것이다.

나중에 집에 가서나 훗날에 그 메모를 확인해보면 그 당시 느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글쓰기 할 때 그 감정을 그대로 투영시키면 되는 것이다.

많은 경험은 많은 메모를 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경험은 많은데 메모를 등한시하게 되면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잠자기 전에도 휴대폰은 머리맡에 두고 자라.

잠을 자다가 좋은 글감을 얻게 되면 메모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메모의 장소를 가리지 말고 몸에 딱 붙이라는 얘기다.

 

‘메모가 없으면 글쓰기도 없다’라는 생각으로 항상 생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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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함께하는 글쓰기 컨설팅] _ 21. 작품 속에서 인과관계는 약방의 감초와 같다.

글쓰기 바로 알기 2020. 4. 13. 14:37

 

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이유 없는 무덤 없다.’라는 말은 누구나 한 번쯤 들었을 것이다.

이 외에도 많은 속담이 있겠지만 핵심은 인과관계라는 점이다.

굴뚝에 연기가 나는 것은 누군가 아궁이에서 불을 피워서 일어난 일이다.

그래서 어떤 결과물이 있다는 것은 그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 대개의 경우 모두 인과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교통사고가 났다고 가정했을 때 운전미숙이라든지, 음주운전이라든지, 돌발적인 장애물로 인한 일이든지, 그 어떤 이유가 있었기에 교통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무슨 일이든 원인이 없는 결과물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 원인을 무시하고 결과만 다루게 된다면 그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은 일이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수사하는 경찰들은 사건의 발생 원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게 된다.

원인을 찾지 못하면 수사는 원점에서 맴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데 있어서도 인과관계는 중요한 일이다.

글 내용에 있어서 사건이 없으면 재미가 없다.

사람들은 은근히 사건을 즐기는지 모른다.

밋밋한 이야기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성문제가 있다면 그 이성문제가 평범한 사건일 경우 그 어떤 독자가 재미를 느끼겠는가.

소비자들은 낯설고, 형이상학적인 이야기에 더 관심을 둔다.

요즘 음식문화가 꽤 자극적이다.

라면이나 치킨이나 그 외 여러 식품이 매운 음식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과거에 비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매운맛이 우리 입맛을 자극하는 시점이다.

이처럼 어떤 자극적일 때 사람들은 관심의 깊이가 더하다.

그래서 작품도 좀 더 자극적인 것을 요구하는지 모른다.

한 사람의 살인보다 열 사람을 해치는 연쇄살인범에 더 방점을 찍는다.

이처럼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데 있어서 평범한 인과관계보다 좀 더 새롭고 충격적인 인과관계를 보고 싶어 한다.

물론 한 사람을 죽인 살인범보다는 여러 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을 다루기 어렵다.

죽인 사람이 많은 만큼 인과관계도 철저해야 다뤄야 한다.

여러 사람을 살해한 것이니 그에 따른 복잡한 사연도 많을 것이다.

그 사연을 모두 엇비슷하게 그린다면 독자는 고개를 돌리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여러 사람을 살해한 일이라면 독자가 고개를 끄덕거릴 만큼 각각 인과관계가 차별성 있어야 할 것이다.

대개 사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면 인과관계에 대한 설정도 무딘 칼처럼 예리하지 못하다.

독자가 의심하지 않도록 제대로 원인 파악이 돼야 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사람이 죽었다고 하면 이것은 가벼운 일이 아니다.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큰 사연이 없지 않고 일어날 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면 글 쓰는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입체적 사고가 필요하다.

죽음에 대한 철저한 원인 규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만약 병으로 죽었다고 과정 하더라도 무슨 이유로 병이 들었으며 그 증상은 어떻게 진행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가족과 생활을 어떻게 변모했는지 등등 속속들이 그 원인을 제공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생활비를 마련하지 못해 죽었다.’라고 단순하게 몇 문장으로 끝낸다면 독자들에게 감흥 주지는 못할 것이다.

인과관계는 우리 생활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물건을 하나 잃어버렸다면 그 물건을 어디서 어떻게 하다가 잃어버렸는지 찾아보는 일이다.

무슨 일이든 원초적으로 어떻게 그 물건을 잃어버리게 됐는지 그 원인을 밝혀야 한다.

그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면 그 물건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거나 어쩌며 그 물건은 내 손으로 다시 못 돌아올지 모른다.

그래서 모든 일에 원인을 잘 찾아낸다면 일은 어렵지 않게 풀 수 있다.

글쓰기 역시 작품 속에 일어나는 사건을 잘 그리려면 사건의 근원을 잘 추적할 필요가 있다.

농부가 봄에 씨앗을 잘 뿌려야 가을에 결실을 잘 거둘 수 있고, 부모가 자식을 어릴 때 교육을 잘 해야 나중에 인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든 원인에 따른 결과가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을 다시금 주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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