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함께하는 글쓰기 컨설팅] _ 58. 불필요한 묘사로 현혹하지 말라

글쓰기 바로 알기 2020. 6. 29. 19:02

 

학작품을 읽게 되면 묘사는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된다.

묘사가 없으면 문장의 맛이 나지 않을 만큼 익숙해진 부분이다.

묘사는 미학적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묘사는 문장에 있어서 꽃 같은 역할인지 모른다.

시, 수필, 소설 등속에서 특히 많이 나타난다.

문학작품이 아닌 글에서는 묘사를 찾기가 힘들다.

또한 장르에 따라 묘사 수법도 다르고 그 양도 차이가 있다.

묘사도 많이 하거나 적게 하면 그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무슨 일이든 적당하게 해야 보기도 좋고 독자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

다음의 소설은 하창수의 소설 ‘수선화를 꺾다’의 일부분이다.

‘불쾌한 듯, 혹은 귀찮은 듯 손을 휘젓는 남자, 담배의 니코틴으로 노랗게 찌든 집게손가락과 중지의 매듭, 허공에 머무는 동안 기묘하게 교차하는 남자의 약지와 새끼손가락, 약지에 깊숙이 끼워진 굵은 보석이 박힌 반지, 그늘이 진 남자의 손바닥, 손바닥의 한복판을 정확히 가로로 갈라놓은 손금.’

위 소설을 보면 손가락에 대한 묘사가 연속되고 있다.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면 손가락 하나하나에 섬세한 터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어떤 사물에 대해 철저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문장을 보게 되면 습작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쓰지 않으면 안 되겠군’ 하며 묘사에 대한 깊은 관심을 둔다.

기실 이 작가뿐만 아니라 대개의 작가도 이 정도 묘사는 기본적으로 한다.

만약 이런 묘사를 글이 아닌 대화로 하게 된다면 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말과 글의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글을 습작하는 사람은 묘사에 관한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한다.

하지만 필자가 위와 같은 문장을 접하게 되면 소설의 주제를 놓고 보았을 때 이러한 묘사가 꼭 필요한 것일까.

묘사를 하더라도 시간을 끌며 장황하게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다.

작가는 작품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고리가 있기 때문에 손가락을 묘사했을 것이다.

‘남자는 불쾌한 듯 손을 휘저었다. 담배 니코틴으로 누렇게 물든 손가락, 약지에 깊숙이 끼워진 굵은 보석이 박힌 반지가 불빛에 빛나고 있었다.’

필자는 이 정도의 문장으로 끝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담배는 거의 집게손가락으로 피우기 때문에 굳이 집게손가락을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허공에 머무는 동안 기묘하게 교차하는 남자의 약지와 새끼손가락,’의 문구는 과연 필요한 것일까.

별로 효용 가치가 없어 보인다.

‘그늘이 진 남자의 손바닥, 손바닥의 한복판을 정확히 가로로 갈라놓은 손금.’에서도 마찬가지다.

불필요한 문장으로 보인다.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면 최소화했으면 하는 것이다.

독자는 묘사로 시간 끄는 것보다 사건에 관심이 더 집중돼 있다.

만약 손가락이 추리소설처럼 어떤 단서가 된다든지, 복선의 역할을 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고 형식적인 묘사로 그려졌다면 그것은 다시금 생각해볼 일이다.

필자의 의견으로는 묘사에 치중하기보다 주제에 충실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사과꽃이 아무리 이쁘고 많이 달리더라도 솎아줘야 한다.

사과꽃이 빼곡히 달리면 사과의 생육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사과꽃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랄 수 있도록 잘 솎아 주는 것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화려한 묘사라 할지라도 솎아줘야 한다.

그것이 글을 잘 쓰는 사람이다.

아깝다고 붙들고 있으면 독자들에게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

자동차 한 대가 출시할 때까지 수많은 부품과 사람의 손길이 닿게 된다.

문학 작품을 하나를 쓰는 작가들도 온 열정을 다 바치게 된다.

그 어떤 것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차 같으면 작은 나사 하나라도 무시하지 않고 잘 채워야 한다.

문학작품 역시 부호 하나도 함부로 지나치지 않는다.

하나의 작품은 그냥 탄생하지 않는다.

‘고진감래’라고나 할까.

소비자에게 최상의 제품을 내놓듯 글 쓰는 사람들은 독자들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지 재차 고민해봐야 한다.

과도한 묘사로 독자를 현혹하는 일은 자제했으면 한다.

‘희소성 가치’라는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묘사만큼은 ‘다다익선’이 아닌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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